잡다한 주제/기타 and 미분류

[펌] 역사속의 닌텐도, '기원을 찾아서'

KSI 2005. 12. 28. 19:41

'마리오'와 '루이지'의 탄생배경 등 닌텐도의 숨겨진 이야기 대공개 


비디오 게임을 즐기시는 분들이라면, 닌텐도(Nintendo,任天堂)의 마스코트 캐릭터인 마리오(Mario)와 그의 동생 루이지(Luigi)를 모르시지는 않으시겠지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 캐릭터는, 일본의 게임 캐릭터에게선 찾아보기 힘든 이탈리아식 이름과 외모를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이 마리오와 루이지라는 캐릭터의 유래에 대해, 닌텐도에서는 '마리오는 맨 처음 이름이 정해지지 않은 캐릭터였는데(실제로 마리오의 데뷔작 '동키 콩(Donkey Kong)에서는 마리오의 이름이 '점프맨'이었습니다), 닌텐도 미국 지사에 근무하는 '마리오'라는 사람과 외모가 너무 비슷하게 생겨서 이름이 마리오가 되었다(일본 잡지 '닌텐도 드림(Nintendo Dream)'의 닌텐도 공식 Q&A 코너 '닌텐도의 질문 상자(任天堂の質問箱)'참고)'라고 공식적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나름대로 재미있는 비화지요. 하지만 같은 참고 자료에서 설명하고 있는 루이지의 이름 유래는 '마리오와 유사하니까(일본어로 類似(유사)는 '루이지'라고 읽습니다)'라는 식으로 간단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처음의 예에는 머리를 끄덕였던 필자도 이것에는 좀 의문이 들었습니다. 미국 닌텐도의 직원에서 유래가 된 이름이라면 미국 닌텐도에서 정했을 가능성이 높은데, 갑자기 일본어에서 따온 루이지라니요? 이것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던 필자가, 우연히 보게 된 영화 한 편이 있었습니다. 1953년 4월에 개봉된 프랑스 영화 공포의 보수(The Wages of Fear, 원제는 Le Salaire de la peur)지요. 감독은 '프랑스의 히치콕'으로 불리는 스릴러의 대가 '앙리-조르주 클루조'라는 사람이고, 유명한 프랑스 배우 '이브 몽탕'이 주연을 맡았지요. 우리 나라에선 90년대에 TV로 방영된 적이 있습니다(DVD로도 출시되어 있으며, 제가 본 것은 이쪽).

이 영화는 프랑스인 마리오(이브 몽탕 분)이 남아메리카인 루이지(폴코 륄리 분)를 포함한 3명의 동료와 함께, 거액의 보수를 대가로 니트로글리세린이 가득 들은 트럭을 운전하며 벌어지는 위험한 여정이 주된 내용인데요.1953년 제6회 칸 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하기도 했던 명작입니다.

...잠깐, 마리오와 루이지라고요?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이름인데. 한번 영화에 등장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기로 합시다.


아무리 봐도 위의 마리오 형제 그림의 구도와 너무 유사하지 않나요? 특히 영화 속 루이지의 모자와 수염은 닌텐도 게임에 등장하는 마리오와 너무나도 흡사합니다. 닌텐도가 공식적인 입장으로 내세우는 미국 지사의 마리오보단, 이쪽이 마리오 형제의 직접적인 모티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은 필자만 드는 것이 아닐 듯 하네요. 어쩌면 마리오와 루이지의 유래에 관심을 가진 어린 게이머들이 위험과 배신으로 가득한 스릴러 영화를 접하고 충격을 받지 않게 하기 위해서, 닌텐도는 거짓 유래를 만들어 공식적인 입장으로 내세웠는지도 모릅니다.


닌텐도와 CD-ROM

세가의 메가 드라이브(Mega Drive, 북미명 Genesis)와 닌텐도의 수퍼 패미컴(Super Famicom, 북미명 Super NES), 그리고 NEC 홈 일렉트로닉스의 PC 엔진(PC Engine, 북미명 Turbografx)이 경쟁을 하고 있었던 16 비트 게임기 시절, 메가 드라이브에 장착하는 CD-ROM 어댑터인 'MEGA-CD'와 PC 엔진의 CD-ROM 어댑터 'Super CD-ROM2('시디롬롬'이라 읽습니다)'의 등장으로 게임 소프트웨어의 저장 매체는 롬 카트리지에서 CD로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했지요.

당시 게임계의 제왕 자리에 군림하고 있던 닌텐도도 이런 시장의 흐름을 그냥 보고 있지만은 않았기 때문에, 수퍼 패미컴의 사운드 칩을 공급하고 있던 소니(Sony)와 함께 수퍼 패미컴용 CD-ROM 어댑터의 개발에 착수했습니다(1991년). 이 CD-ROM 어댑터의 이름은, 지금의 게이머들에게 익히 친숙할 '플레이스테이션(PlayStation)'이었지요. 아래의 사진을 보면, 이 때부터 특유의 폰트로 쓰여진 PlayStation 로고가 만들어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시제품 사진까지 공개되어 있던 닌텐도 플레이스테이션이었습니다만, 왜인지 닌텐도는 얼마 지나지 않아 소니와의 계약을 취소한 뒤 이번엔 필립스(Philips)와 함께 새로운 CD-ROM 어댑터의 개발에 착수했습니다. 이에 분개한 소니가 플레이스테이션이라는 이름의 독자적 게임기를 만든 것은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지요. 그런데 여기서 잠깐. 그럼 닌텐도가 필립스와 함께 개발하려 했던 CD-ROM 어댑터는 어떤 것이었을까요?


미국의 게임 잡지 EGM(Electronic Gaming Monthly)에 공개된 자료에 의하면, 필립스와 닌텐도가 공동 개발하고 있던 CD-ROM 어댑터는 이런 모양입니다. 어떻게 해서 수퍼 패미컴에 장착하는지 의문이 가는 디자인의 닌텐도 플레이스테이션과는 달리, 메가 CD처럼 본체 아래 장착하는 알기 쉬운 구조이지요. 물론 이 물건도 개발 도중에 취소되어 결국 발매 되지는 못했습니다. 이 물건은 CD-ROM의 닌텐도적 어레인지인 ND(Nintendo Disc)라는 오리지널 포맷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 특징인데요. ND는 CD를 플라스틱 보호 케이스로 감싸고, 세이브를 위한 256kbit의 백업 램이 내장된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하나의 ND마다 백업 램이 들어 있다는 것은, 당시 닌텐도의 '카트리지적 사고'를 볼 수 있는 부분이군요. 지금의 소니처럼 따로 메모리 카드를 파는 편이 수익 모델로서는 더욱 좋았을 텐데...


또한 이 기기는 필립스의 CD-I(CD-Interactive의 약자) 타이틀도 재생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었으며, 그것을 대비해서 필립스는 닌텐도의 라이센스를 받아 1개의 마리오 게임과 3개의 젤다 게임을 CD-I용으로 출시했었지요(물론 닌텐도의 것과는 게임 방식도 완성도도 많이 차이가 납니다). 닌텐도가 왜 이렇게까지 CD-ROM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하고도 CD-ROM의 사용을 포기했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CD-ROM의 로딩 타임이 게임을 하는데 적합치 않다고 판단했다는 설과, 지금까지 닌텐도 소유의 카트리지 공장에서 얻었던 이익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라는 두 가지 설이 제일 유력합니다.


지금은 퍼즐 게임의 동의어처럼 느껴지는 인기 게임 '테트리스(TETRIS)'의 이름을 모르시는 분은, 아마 게임동아를 방문하시는 분들 중에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구 소련의 과학자 '알렉세이 파지트노프(Alexei Pajitnov)' 외 2인이 개발한 이 단순하면서도 중독성 있는 퍼즐 게임은, 미러 소프트(Mirror Soft)라는 회사가 미국에 유통하게 된 이후 세계적인 붐을 일으키게 되지요.


많은 분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을 위 사진의 테트리스는, 미국의 게임 회사 '아타리(Atari)'가 1988년에 아케이드로 출시한 것입니다. 일본에는 같은 년도에 세가에서 만든 아케이드용 테트리스가 출시되었는데, 이것이 일본 최초로 발매된 테트리스 게임이지요. 세가는 미러 소프트에게서 테트리스의 판권을 산 아타리의 허가를 얻어 아케이드판 테트리스를 만들었고, 비슷한 시기에 BPS(당시 Bullet-Proof Software, 지금은 Blue Planet Software)라는 회사는 역시 미러 소프트에게서 판권을 산 '텐겐(Tengen)'의 허가를 얻어 패미컴판 테트리스를 만들었습니다.


세가에서 발매한 아케이드판 테트리스는, 마치 우리나라에서 아타리 테트리스와 '버블 보블(Bubble Bobble, 흔히 '보글보글'이라 불리는, 공룡이 방울을 쏴 적을 가둔 후 터뜨리는 액션 게임. '타이토(Taito)' 제작)'이 그랬던 것처럼 남성의 전유물이던 게임 센터에 여성 고객을 끌어들이는 역할을 하며, 폭발적인 수입을 기록했습니다. 당연히 세가는 이 인기 게임을 자사의 가정용 게임기인 메가 드라이브로 이식하기로 계획하고, 자회사인 '심스(Sims)'에게 이식을 맡긴 메가 드라이브판이 완성되어 출시를 눈 앞에 두었을 무렵... 청천벽력같은 일이 벌어졌지요.

닌텐도가 테트리스의 제 1 판권자인 소련 정부와 교섭하여 가정용 테트리스 게임의 독점권을 얻은 후, 세가에게 소송을 걸어 메가 드라이브판 테트리스의 출시를 차단해 버렸습니다. 미러 소프트나 아타리, 텐겐이 가지고 있는 테트리스의 판권은 아케이드나 PC판에만 해당하며 가정용 게임기와는 완전히 별개의 분야라는, 지금 생각하면 억지에 가까울 정도의 이유 때문에 세가는 결국 다 만들어 놓은 메가 드라이브판 테트리스를 발매할 수 없게 되었지요. 세가에게서 테트리스를 빼앗은 닌텐도는 자사의 휴대용 게임기 '게임 보이(Game Boy)'의 초기 타이틀로 테트리스를 발매해 대 히트를 기록했고(제작은 BPS), 많은 울분에 찬 올드 세가 팬들은 이 사건을 아직도 '리멤버 테트리스(Remember Tetris)'라는 말로 되새기곤 합니다.


이 사건 이후 세가는 테트리스를 대신할 목적으로 개발된 메가 드라이브의 오리지널 퍼즐 게임 '컬럼스(Columns, 3개씩 떨어지는 보석을 가로/세로/대각선으로 맞추면 소거되는 게임. 국내에는 아류작의 이름인 '헥사(Hexa)'로 더 유명하다)'를 출시하게 됩니다. 또한 나중에는 컬럼스에서 시작된 '같은 색을 맞추면 소거'와 '연쇄'라는 개념을 더욱 확장하여, '컴파일(Compile)'사와 함께 지금도 시리즈가 이어져 내려오는 명작 퍼즐 '뿌요뿌요' 시리즈를 만들기도 했지요. 비록 닌텐도는 세가의 큰 기회 중 하나(사실 '하나'로 끝나지 않습니다. 이쪽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를 비열한 방법으로 빼앗아 가긴 했지만, 그것으로 인해 새로운 시도의 게임들이 등장하여 '낙하형 퍼즐 게임'이라는 장르 자체를 더욱 발전시키게 되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컬한 사실입니다.

한편 세가가 발매하지 못했던 메가 드라이브판 테트리스의 ROM은 대만이나 홍콩 등으로 유출되어, 복사 카트리지의 형태로 시장에 떠돌게 됩니다. 실제로 출시된 적은 한 번도 없는 이 게임이 유명한 홍콩 영화에 당당히 등장하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지요.


양립할 수 없었던 형제

지금은 아득한 옛날처럼 느껴지는 16비트 게임기 전쟁 시절, 세가의 '메가 드라이브(Mega Drive)'가 닌텐도의 '수퍼 패미컴(Super Famicom)'보다 절대적으로 우월한 부분은 바로 CPU의 스피드였습니다. 메가 드라이브의 CPU인 Motorola 68000이 7.61 MHz로 동작하는 데 비해, 수퍼 패미컴의 CPU인 WDC 65C816은 상대적으로 훨씬 느린 1.79MHz/2.68 MHz/3.58 MHz의 가변 스피드로 동작하는데, 바로 전의 기종인 8비트 게임기 '패밀리 컴퓨터(Family Computer, 통칭 패미컴(Famicom))' 호환을 위해 CPU 구조가 이렇게 되었다는 것은 유명하죠(1.79MHz는 바로 패미컴 CPU의 클럭 스피드입니다). 하지만 완벽한 호환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정식 제품 출시 때는 패미컴 호환 기능이 폐지되었습니다.


위 사진은 일본 '소프트뱅크 퍼블리싱(SoftBank Publishing)' 발행의 'Beep 복각판(復刻版)' 중 일부분을 촬영한 것으로, AV 출력 대응 패미컴(통칭 뉴 패미컴, 기존 패미컴에선 RF 출력밖에 지원되지 않았습니다)과 수퍼 패미컴의 프로토타입을 촬영한 사진입니다. 사진을 자세히 보시면 두 기계의 컨트롤러 삽입구가 같은 모양이고, 수퍼 패미컴의 본체에는 버튼이 3개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진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수퍼 패미컴의 카트리지 슬롯 아래에 위치한 붉은 POWER 버튼 아래의 버튼에는 FAMICOM이라고 쓰여 있으며, 패미컴 카트리지를 넣고 이 버튼을 누르는 것으로 패미컴 게임을 플레이 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을 것이라 추정됩니다. 두 기종의 컨트롤러 삽입구가 같은 것도 뉴 패미컴의 패드를 수퍼 패미컴에서 사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겠지요. 이후 수퍼 패미컴의 패미컴 호환 기능이 폐지됨에 따라 수퍼 패미컴의 컨트롤러 삽입구 구조가 바뀌게 되지만, 뉴 패미컴은 사진과 같은 컨트롤러 삽입구를 장착한 채 출시되었습니다.


닌텐도가 그 위세를 전 게임 업계에 떨쳤던 패밀리 컴퓨터(패미컴)/수퍼 패미컴 시절. 말 그대로 '제국'이라고 불릴 수 있을 만한 기반을 가진 닌텐도는, 자신의 지배 하에 있는 소프트 개발사와 도매상들에게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황제' 그 자체였죠.

이러한 절대 권력을 이용해서 닌텐도는 서드 파티의 소프트가 팔리던 안 팔리던 닌텐도가 이익을 얻는 독점적인 유통 시스템을 확립했는데요. 수퍼 패미컴 카트리지의 정가 9,800엔이 어떻게 책정되는지 정리한 아래의 내용을 보시면 이해가 빠르실 겁니다.


마스크 롬 - 1,500엔

닌텐도에의 생산 위탁 로열티 - 1,500엔

소프트 개발비 - 1,000엔

소프트 메이커 마진 - 1,000엔

선전/광고비 - 600엔

리스크 회피 요금 - 500엔

도매상 마진 - 1,200엔(초심회 멤버인 1차 도매상에게 돌아갑니다)

소매점 마진 - 2,500엔


슈퍼 패미컴의 소프트는 롬 카트리지에 저장되고, 롬 카트리지와 그 안에 들어가는 부품인 마스크 롬은 닌텐도에서밖에 생산할 수 없었기 때문에 소프트 개발사는 닌텐도에게 마스크 롬을 구입하고 생산 위탁 비용을 지불할 수 밖에 없었지요. 또한 소프트가 팔리지 않을 경우 닌텐도가 부담할 손해에 대비하여 '리스크 회피 요금'이라는 것을 받았는데, 물론 소프트가 잘 팔리면 이 비용은 모조리 닌텐도 손에 들어오는 것이 됩니다. 만약 소프트가 정말 안 팔린다 하더라도 적어도 생산 비용의 '본전 치기'는 되는 것이고요.

이후 생산비가 적게 드는 CD-ROM으로 게임 소프트의 매체가 변화됨과 함께, 음반 유통의 노하우를 게임 소프트 유통에 적용시킨 SCE(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와 플레이스테이션의 등장, 그리고 대성공으로 이러한 닌텐도의 기형적인 유통 시스템은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졌습니다만... 요즘 게임 시장의 동태를 보면, SCE 역시 서드 파티를 손에 쥐고 마음대로 휘두르는 새로운 '제국'으로서 올라서고 있는 듯 보입니다. 과연 역사는 계속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는 것일까요?


빛과 어둠의 초심회

예전부터 게임을 즐겨 오신 분들이라면, '초심회(初心會)'라는 말을 한 번 쯤은 들어 보신 적이 있으실 겁니다. 초심회는 닌텐도가 예전에 완구 사업을 하던 시절부터 조직화하고 있던 완구 도매상의 집합체 '다이아회(ダイヤ會)'가 그 전신으로, 패미컴/슈퍼 패미컴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는 이 초심회를 통해서만 판매되었습니다. 또한 초심회는 패미컴/슈퍼 패미컴의 서드 파티 소프트 발매 여부를 결정하는 일에도 참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지요.

닌텐도가 이렇게 폐쇄적인 게임 유통 체계를 설립한 까닭은, 패미컴의 데뷔 전에 있었던 유명한 사건인 '아타리 쇼크'때문이었습니다. 미국 아타리사가 만든 가정용 게임기 '아타리 VCS(Video Computer System)'는 미국 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폭발적인 대 히트를 기록했지만, 누구나 아타리 VCS용 소프트를 만들고, 유통하고, 심지어는 생산까지 할 수 있었기 때문에 히트 게임의 아류작이나 완성도가 낮은 게임들이 범람해 결국 시장에서 자취를 감추어 버렸지요. 이 사건을 흔히 아타리 쇼크라고 부릅니다.

초심회에 의한 관리로 닌텐도는 패미컴/수퍼 패미컴의 하드웨어/소프트웨어 유통을 전부 자사의 손바닥 안에 놓을 수 있었고, 또한 초심회에 의한 소프트웨어 심의는 저급 소프트의 양산을 막는다는 장점도 있었기 때문에 일석 이조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만, 이런 초심회의 시스템에도 심각한 문제점들이 있었습니다.

소프트웨어가 팔리지 않으면 결국 초심회 소속 도매상들이 악성 재고를 떠맡을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초심회의 심의에서 높은 점수를 얻는 것은 신생 회사의 참신한 게임보단 탄탄한 과거를 가진 회사의 히트 시리즈 후속작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이때부터 후속작이나 리메이크작이 범람하는 관행이 어느 정도 형성되었다고 봐도 과언은 아닐 듯 합니다. 또한 이러한 악성 재고 처리의 대책으로 인기 소프트 하나와 인기가 없는 소프트 여러 개를 묶어서 소매상에게 넘기는 '끼워팔기'가 정착되는 악습을 낳기도 했지요...